대한민국 정신문화의 수도 경북 안동의 출향인 단체 영가회(회장 박대섭)에서 중국의 무이산을 찾아 주희가 펼치는 성리학의 본산으로 향했다. 지난 19일 인천 공항을 출발한 일행은 3시간의 비행 끝에 중국 남방지역인 하문 공항에 도착, 4일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이번 역사탐방은 영가회의 연례행사로써 관광보다는 역사적 고증의 가치를 찾아 실체 체험함으로써 느끼는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대부분 60-70대로 구성된 참가자들은 3박 4일간의 빠듯한 일정을 거뜬히 소화해내는 체력을 과시했다.
무이산은 중국 장시성 치엔샨현과 푸젠성우이샨시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한나라 무제가 이곳에서 말린 생선을 제물로 하여 무이군에게 제사를 지내서 무이산이라 칭하게 된 산이다. 무이산은 흔히 9곡의 물, 36봉우리, 72동천, 99바위 등으로 유명한 곳이다.
중국 10대명산으로 1999년 중국의 대표 문화 및 자연유산지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무이산은 중국의 무릉도원이라고 불릴만큼 아름다운 풍경과 역사를 자랑 하는 곳이다.
무엇보다 주자학을 집대성한 유학자 주자가 은거하여 학문을 닦고 후학을 양성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조선시대 선비들이 무이산을 그린 무이구곡도를 방에 걸어놓을 정도로 흠모한 산이다. 한국의 주자학자들은 주자의 무이구곡을 본받아 시를 읊고 그림을 그린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주자라는 중국인이 되려고 한 것은 아니라 이상적인 인간인 성인이 되고자 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곳은 많은 도교 관련 건물들이 세워졌고 불교 사찰들도 많이 지어졌으며 송대에 이르러 주희가 이곳에 와서 서원을 세우고 교육 활동을 하여 유불도 세 종교의 성지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곳이다.
특히 가장 명물은 대나무와 차가 생산되는 곳이다. 가이드의 설명대로 무이산 주변은 온통 차 밭이 계곡의 구석구석 빈 땅 없이 생산되고 있었는데 서늘한 바람과 고온다습한 계절이 차 재배에 적합한 자연환경이라고 했다.
대홍포, 금준미는 중국 10대 명차에 들어갈 정도로 유명하며 유네스코 세계문화 자연유산으로 선정되어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다. 안동인이 이곳을 찾은 가장 큰 이유는 도교의 본산을 찾아 잃어가는 급변하는 문명속에 살아있는 문화를 되찾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만큼 여행 그 이상의 가치를 찾게 됐다.
20일 아침부터 짐을 꾸린 일행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천유봉, 무이구곡 6곡에 속하는 이곳은 5곡의 자양서원과 경계가 되는 곳으로 바위에 계단과 난간을 만들어 선과 같은 장관을 이루며 산을 오르는 사람의 행렬 또한 선처럼 이어져 있다.
수려하기로는 옥녀봉이 최고지만 험하기로는 접순봉이 큰 돌덩어리에 불과할 것 같지만 많은 관광객 들의 시선을 독차지하는 풍광을 지니고 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돌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도 다르니 어떤 사물이든 견해 차이가 있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경관이다.
다음 코스로는 뗏목을 타고 90분 동안이나 병풍 같은 기암절벽 사이로 도도히 흐르는 장강을 따라 경관을 즐기는 차례였다. 물줄기가 아홉 번 굽이 친다 하여 이름 붙여진 구곡계는 구곡부터 1곡까지 9.5km에 달하는 계곡을 대나무 뗏목에 뗏목 1대에 8명씩 나눠타고 강물을 따라 함께 흐르다 보면 시 한수가 절로 나올 수 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일행 중 한 사람은 이런 시로 자연의 신비를 읆조렸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만남”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무이산의 비경 속에 자리 잡은 삼현사는 인간의 존엄과 도덕의 가치가 시대를 초월하여 유효함을 묵묵히 증명하고 있었다.
비록 짧은 방문이었으나, 보슬비 속에 만난 삼현사는 나에게 성리학의 위대한 뿌리를 목격하게 해주었고, 선생 할배의 정신을 다시금 가슴에 새기게 한 귀중한 시간이었다. 거대한 암벽 아래 고요히 자리한 사당의 풍경은, 성리학의 정수가 담긴 선명한 기억으로 내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선착장인 마두에서 내려오다 처음으로 만나는 9곡은 8곡이 새겨져 있는 사자 앞에서도 의연한 거북바위, 신선의 회랑 같다는 7곡의 북랑암, 6곡의 선장봉, 5곡의 은병봉, 4곡의 대장봉, 3곡의 소구곡 등도 모두 멋있지만 9곡의 최고는 옥녀봉이다.
신이 조각한 듯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뚝 서 있는 이 봉우리는 천상의 옥녀가 무이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싶어 세상에 내려왔다가 대왕과 사랑하게 되어 이별을 못하니 옥황상제가 이 둘을 봉우리가 되게 한 후 구곡계 양쪽 언덕에 떨어져 있게 했다는 전설이 있다.
오후 들어 뗏목 유람을 마친 일행은 무이궁을 찾았다. 무이궁은 주희 기념관 옆 대왕봉 남쪽에 있는 무이산에서 가장 오래된 도교의 궁전으로서 당나라 때 건립되었으며 송나라 때에는 송의 6대 도관의 하나로 웅장한 자태를 지니고 있다. 이어진 일정에는 300여개의 계단을 올라 수렴동을 만났다.
무이산의 가장 큰 바위굴로 폭포와 동굴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는 수렴동, 그리고 삼현사에서 오랜 흔적들을 접하며 기념촬영에 일사불란한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삼현사를 찾은 일행 중 한명은 “자연이 가려준 성역, 삼현사”라는 제목으로 소감을 밝혔다.
<보슬비가 무이산의 절경을 촉촉하게 적시던 날, 나는 안동 영가회 해외 순방의 일환으로 바쁜 일정을 잠시 뒤로하고 성리학의 거대한 뿌리가 내린 「 삼현사 」를 찾았다. 삼현사는 무이산의 웅장한 암벽 아래, 마치 대지의 품에 안긴 듯 아늑하고도 장엄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황갈색 암벽은 하늘을 가릴 듯 솟아 천연의 지붕이 되어주었고, 그 아래 깃든 단청이 없이 소박하고 묵직한 목조 사당은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성자의 모습과도 같았다.>라고 적어왔다. 저녁에는 거장 장예모 감독의 인상대홍포쇼 공연이 비를 맞으며 진행됐다.
천년 만에 만나는 연인의 이야기와 무이산의 대표적인 차 대홍포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었는데 3,000명의 관람객 좌석이 1시간 동안 360도 회전하며 4방을 보여주는 기획은 역시 중국의 대담한 스케일중 일면을 보여주는 듯 했다.
장예모 감독은 영화 붉은 수수밭, 5월의 마중 등 유명한 영화는 물론 베이징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 총감독을 맡기도 한 중국 대표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5개의 인상 시리즈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다음날인 21일은 고랑서의 유럽식 건물들이 즐비한 곳으로 유명한 숙장화원을 방문했다.
대만의 부자였던 린얼자가 만든 정원에 도착했다. 과거 일본이 대만을 침략하자 바다 건너 중국 구랑위로 왔다가 고향을 그리워 하는 마음으로 지은 정원이다. 지금은 피아노 박물관으로 관광객에게 개방했는데 약 70여대의 세계적인 피아노들이 수집되어 있다.
린얼자가 손주들을 위해 만든 돌 미로는 십이지신이 숨겨져 있어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샀다. 이어 찾은 곳은 일광암, 일광암은 구랑위와 샤먼섬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해발 92.7m의 최고의 암벽 전망대로서 정상에는 직경이 40m 인 거대한 바위가 샤먼의 상징처럼 멀리서도 보인다.
정상을 올라가는 길목에는 영웅 정성공이 대만 수복시 이곳에 군사를 주둔시켰으며 그 당시 사용했던 수조대, 용두산 산채등 고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도덕과 윤리가 갈수록 메말라가는 현대사회의 각박함속에 사람사는 도리의 원천을 찾아나선 영가회는 22일 처음 도착했던 하문 공항을 출발, 짧았던 3박 4일의 일정에 아쉬움을 표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아래는 일행 중 김용군 님이 전해온 즉석시로써 현장의 감흥을 고스란히 담았다. “무이 구곡” <사공의 복건성 얼화 기쁘게 들리고 대나무 삿대 끝에 붙은 쇠 바위 건드리는 소리 경쾌하네, 계곡은 굽어 있고 웅장한데 물소리 조용하고 땟목은 꿈속을 흐르는 듯 허공을 떠 도네,
주희의 흔적 따라 시간이 유유히 흐르는데 시를 읽어주는 친구 모습 정겹고 두런두런 감흥을 나누는데 둘러선 검은 바위 하늘가로 장엄하니 감탄이 절로 나네, 우리야 문명의 하늘 길로 쉽게 왔지만 그때야 어찌 가능했겠는가 우리 선인들 오고 싶은 그 마음 알겠네 구곡가를 즐기던 그 그리움 알겠네 사람의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고 시간이 마음 속으로 편하게 흐르네,“
김균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