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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의 밤 가수 오기택 별세

기사입력 2022-03-2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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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요계의 큰 별로 알려진 오기택 원로 가수가 지난 23일 오후 4시 39분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1939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한 오기택 가수는 고등학교때 상경해서 성동공고 기계과를 졸업하고 동아 예술학원에 입학했다.

그러다 재학 중이던 1961년 12월 제 1회 KBS 직장인 콩클 대회에서 동아백화점 대표로 출전해 1위에 오르며 가수생활을 출발했다. 이후 1962년 신세기음반과 전속계약을 맺고 본격적인 가수생활을 시작했다.

1963년 많은 국민들의 귀에 익숙한 “영등포의 밤”을 출발로 “아빠의 청춘” “마도로스 박”“고향무정“”충청도 아줌마” “남산블루스”“비 내리는 판문점” 등 연속적인 히트곡을 발매하며 인기의정상을 누렸다.

당시 많은 곡중 ’영등포의 밤“은 남궁원과 엄앵란이 주연한 영화로도 제작되어 극장가를 휩쓸었고 오기택 가수의 노래를 모를 사람이 없을 만큼 한국 가요계의 획을 그었다.

오기택 가수는 1979년 한국 연예예술인 협회 가수분과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여기에 힘입어 그동안 고향인 해남에서는 오기택 가요제도 개최되고 2010 타임스퀘어 광장에는 노래비까지 설립된 바 있다.

오기택 가수는 노래뿐만 아니라 스포츠에도 남다른 실력을 보여준 바 있다. 1981년부터 3년간 전국체전 전남 대표로 출전해 단체 금메달과 개인 1위 등 3관 왕을 차지한 바 있다.

그러던 중 1996년 사고를 겪으면서 건강이 급격히 악화 된데다 1997년에는 무인도로 바다낚시를 하다가 뇌출혈까지 겹쳐 요양을 받아 왔다. 이후 급격히 떨어진 체력과 지병의 악화로 병마와 싸우다 먼 곳으로 떠났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한강성심병원에 안치되었으며 발인은 평생 미혼으로 지낸 고인은 전남 해남고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장학금으로 기부한 바 있다.

목소리 자체에 그윽하고 중후한 감정이 베여있던 오기택 가수는 저음이 마법사라 불릴만큼 많은 팬들이 관심을 보여 왔다.

향년 83세, 26일 발인 예정인 고인의 빈소는 많은 가수, 연예인들의 고인의 별세에 애도를 표하며 한국 가요계의 발자취에 큰 자국을 남겼다는 안타까움을 금치 않았다.

심귀자 기자 (bkshim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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